이유를 아는 것은 제 인생의 화두입니다.
무슨 일을 하든 이유가 명확하고 명분이 있어야만 합니다.
그래서 학창 시절에는 수학과 과학을 참 좋아했습니다.
그러다 사춘기가 오면서 인생이란 수학, 과학처럼 딱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삶의 지혜를 통찰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게 됩니다.
그러다 동양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과였던 저는 집 가까운 한의대에 들어가게 됩니다.
그러나 동양철학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한의학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.
그 기초가 되는 음양론이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본초, 침구, 방제 등 한의학 수업이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. 단순히 지식을 외우는 것 만으로 한의학을 푼다는 것은 저를 참 힘들게 했습니다. (그래서 최근 한의학에 회의를 느끼는 후배들의 기사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.)
그렇게 수십 년을 그 이치 하나를 깨우치기 위해 달려온 지금 '一以貫之'(일이관지 -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것을 꿰뚫는다는 뜻.)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감히 자부합니다.
하지만 자만은 근물이라 했습니다. 어느 날 자신감 있게 진료를 하는 중에 환자 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일이 있었습니다. 진단과 치료에 확신이 있었으나 차도가 생각만큼 따르지 못 했습니다. 그 때 '醫者仁術'(의자인술)이라는 말이 떠 올랐습니다. '의사된 자는 仁(인)을 행해야 한다.' 진정한 의사는 疾醫(질의 -질병을 치료하는 의사)가 아니라 心醫,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.
준비되었다 생각하지만 자만하지 않겠습니다.
따뜻함을 간직한 의사로서 장차 心醫가 되기 위해 한발 한발 나가고자 다짐해 봅니다.